상처덮는 밴드의 시작과 역사

어느 집에나 항상 구비해 둬야하는 밴드.
정말 없는 가정 거의 없으실듯 합니다. 이 상처에 필요한 밴드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시기가 언제인지 생각해 보셨나요?
그리고 여러 브랜드의 밴드 중에서 왜 “대일밴드”로 불리우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

상처덮는 밴드의 시작과 역사



상처를 덮는 역사의 시작

일회용 밴드의 최초 개발자는 미국인 얼 딕슨이라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으로 인해 밴드를 발명하게 됩니다.



아내사랑에서부터 시작된 밴드

딕슨은 1920년대 미국에서 신혼 생활 중 요리가 서툰 아내가 종종 손을 베이거나, 데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딕슨은 아내의 상처를 보며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고해요. 당시에는 상처 치료를 위해선 붕대와 거즈를 사용했지만, 이것이 불편하고 번거로웠기 때문이죠. 그리서 딕슨은 아내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더 쉽고 편리하게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에 이르러요.

어느 날 딕슨은 테이프와 거즈를 이용해 아내의 상처를 덮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그는 즉시 집에 돌아와 테이프와 거즈를 이용해 직접 밴드를 만들기 시작했죠. 처음 만든 밴드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딕슨은 아내의 상처를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하여 수년간의 노력 끝에 딕슨은 마침내 만족스러운 밴드를 만들어냈어요. 그는 이 밴드는 ‘밴드 에이드(Band-Aid)’라고 이름 붙이고 특허를 신청했어요.

처음에는 의료계와 일반 대중의 반응이 미적지근했지만, 딕슨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는 밴드에이드의 편리함과 실용성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기에 이르렀죠. 결국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일회용 밴드가 되었답니다.





1. 밴드-한국에서의 시작

우리나라에서의 밴드는 단순한 밴드가 아닌, 따뜻한 역사를 갖고 있어요.
1955년, 의약품 제조업체였던 대일제약에서 국내 최초로 생산한 밴드인 “대일 밴드”로 시작되었죠. 당시에는 의료 물품이 부족했던 시대였기에 획기적인 제품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2. 성장

대일밴드는 시장에 선을 보인 이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갔어요. 1960년대에는 방수 밴드, 1970년대에는 탄성밴드, 1980년대에는 멸균 밴드 등 시대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특히 1975년에 출시된 “착한밴드”는 아이들의 민감한 피부를 고려한 저자극성 소재와 귀여운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받았죠.
뿐만 아니라, 대일밴드는 의료용 밴드에서 나아가 산업용 밴드, 체육용 밴드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게 돼요.
또,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현재는 전 세계 7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하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죠.


3. 혁신

1990년대, 국내 최초로 핫멜트 공법을 도입해 뛰어난 접착력과 방수성을 가진 밴드를 생산했어요. 2000년대 이후에는 나노 기술, 생체 적합 소재 등을 활용한 혁신적인 제품들을 출시해 기술력을 강화했죠.

딕슨의 밴드 에이드의 발명은 전 세계인의 삶에 좋은 영향을 많이 주었어요. 상처치료 뿐만 아니라 감염 예방에도 도움을 주었고, 다양한 분야로 발전되어 활용되고 있으니까요.

밴드는 아내를 향한 따뜻한 마음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발명품이에요. 아내의 상처를 덮어주고 싶은 사랑에서 시작된 발명품 밴드는 지금도 다쳐서 당황해 있는 우리들에게 살포시 덮어 안정감을 주는 치료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죠.
주변을 둘러보세요. 작은 관심이 당신을 발명가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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